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과 함께 보는 2026 WEC 관전 가이드 | Part 3: 피트 스톱
FI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 세계 내구 선수권 대회(FIA World Endurance Championship, 이하 WEC) 역사상 최초의 한국 완성차 브랜드로 출전한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Genesis Magma Racing)이 첫 르망 24시간을 치른 지 불과 4주 만에 브라질 인터라고스에서 개최된 2026 WEC 시즌 4라운드 상파울루 6시간 레이스를 또 한 번 완주했다.
데뷔 시즌을 맞은 팀의 목표는 단순했다. 매 레이스를 완주하면서 경주차의 완성도를 높이고, 드라이버의 기량을 높이고, 팀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내구 레이스는 단순 속도보다 얼마나 더 먼 거리를 달렸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경주차가 트랙을 벗어나 피트 레인에 머무는 시간은 곧 경기 결과에 직결된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상파울루 6시간의 인터라고스 서킷에서 르망 24시간에 이어 2회 연속 하이퍼폴 진출에 성공하며 경쟁력 있는 페이스를 증명했다. 또한 본선 레이스에서도 GMR-001 하이퍼카 두 차량 모두 시즌 처음으로 기술적 결함 없이 완주했다. 다만 페널티와 미세한 실책들이 겹치며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화려한 모터스포츠 경력을 지닌 팀들 사이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하는 신생 팀인 만큼, 성패를 가르는 찰나의 실수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어떤 레이스에서든 피트 스톱은 ‘통제된 혼돈’과 같다. 정확한 타이밍과 고도의 정밀함,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레이스의 완주 여부를 가른다.
“박스, 박스(Box, Box!)”
이 짧은 무전은 드라이버에게 피트 스톱을 위해 레인으로 진입하라는 신호다. 피트 레인으로 진입한 드라이버는 속도 제한 장치를 작동해 시속 60km까지 감속한다.
경주차는 지정된 피트 박스로 들어와 피트 스톱 작업 전반의 안전을 책임지는 카 컨트롤러가 들고 있는 정지 지시 패들, ‘롤리팝(lollipop)’ 앞에 멈춰 선다. 이후 엔진이 꺼지고, 차체에 축적된 정전기를 방지하기 위한 전기 접지 작업까지 완료된 후 본격적인 정비 작업이 시작된다.
여기서 가장 먼저 차량의 급유를 담당하는 ‘리퓨얼러(refueler)’가 고압 연료 호스를 든 채 차량으로 달려간다. 리퓨얼러가 GMR-001 하이퍼카의 연료 주입구에 호스를 연결하는 순간, 약 40초 동안 총 80리터의 연료가 강력한 압력으로 차체 탱크 내에 가득 채워진다.
안전을 위해 급유 중에는 드라이버 교체나 타이어 교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정비 작업이 엄격히 금지된다. 유일한 예외는 전면 유리에 들러붙은 잔해와 먼지를 청소하는 피트 크루뿐이다. 시속 330km에 육박하는 속도에서는 단 하나의 실수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드라이버의 전방 시야 확보를 위해 윈드실드는 늘 깨끗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 때 나머지 크루들은 모든 동작을 멈춘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급유 완료, 타이어 교체 시작
연료 호스가 분리되는 순간, 피트 박스는 일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타이어 전담 크루가 경주차 하부 측면에 ‘휠 랜스(wheel lance)*’를 힘껏 밀어 넣어 공압식 잭*을 작동시키면, 경주차의 네 바퀴 모두가 지면에서 순식간에 떠오른다.
*휠 랜스(wheel lance): 하이퍼카 클래스의 피트 스톱에서 사용되는 차량 활성화 장치로, 차량 측면의 통합 포트에 삽입하는 막대 모양의 금속 봉
*공압식 잭(pneumatic jack): 압축된 공기의 힘을 이용해 물체를 들어올리는 장비로, 피트 스톱 중 차량을 들어올리기 위해 사용됨
이후, 전륜 타이어를 담당하는 ‘휠 거너(wheel gunner)’는 수천 번의 반복 훈련으로 단련된 동선으로 전면 타이어에 에어 건을 조준하고, 바퀴를 고정하고 있는 단일의 너트를 풀어낸 후 눈 깜빡할 사이에 바퀴를 떼어낸다.
바퀴가 분리됨과 동시에, 휠 거너는 뒤에서 새 타이어를 안고 대기하던 ‘휠 캐리어(wheel carrier)’와 완벽한 호흡으로 서로의 바퀴를 교체한다. 오랜 시간과 경험을 통해 다듬어진 이 과정은 하나의 예술에 가깝다.
한쪽 타이어 정비가 완료되는 즉시 이들은 차량 반대편으로 질주해 같은 방식으로 타이어를 교체한다. 동시에 다른 두 명의 피트 크루 역시 후륜 타이어를 교체한다. 그동안 피트 스톱 과정 전반을 총괄하는 카 컨트롤러는 하이퍼카 앞에서 롤리팝을 든 채 피트 스톱 전 과정을 주시한다.
타이어 교체가 끝나면 크루는 차체 하부에서 휠 랜스를 탈착해 경주차를 지면에 안착시킨다. 이 모든 과정은 단 2분 만에 끝난다.
카 컨트롤러가 롤리팝 패들을 들어 올려 출발 신호를 보내면, 드라이버는 우렁찬 엔진 굉음을 터뜨리며 다시 트랙으로 나선다.
GMR-001 하이퍼카의 피트 스톱 전 과정은 아래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피트 전략
내구 레이스에서 피트 스톱 시점을 정하는 일은 단순히 연료가 고갈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트랙 위에서 벌어지는 실시간 상황과 다각적인 변수들을 계산해 움직이는 고도의 전술이다. WEC에서 각 레이싱 팀은 현재 차량 순위를 안정적으로 방어하거나 선두 경쟁 차량을 추월하기 위해 치밀한 수싸움을 바탕으로 피트 스톱을 설계한다.
언더컷(Undercut)
언더컷은 앞서 달리는 차량을 추월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피트 스톱을 감행하는 공격적인 전략을 통칭한다. 예를 들어 선두 경쟁 차량을 추격 중인 GMR-001 하이퍼카가 예정된 피트 스톱 타이밍보다 1~2랩 일찍 피트 레인으로 진입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서킷에 남아 있는 경쟁 차량과 거리 격차가 더욱 벌어지나, 선두 차량은 마모된 타이어 탓에 페이스가 떨어지며 트랙 위에서 점차 시간을 잃는다.
이때 GMR-001 하이퍼카는 접지력이 극대화된 새 타이어로 피트 아웃해, ‘아웃 랩(out-lap)*’에서 랩타임을 줄이고 새 타이어의 온도를 빠르게 끌어올리게 된다. 1~2랩 이후 선두 경쟁 차량이 정상적인 피트 스톱을 마친 뒤 트랙으로 복귀하는 시점에 이르면, 두 차량의 순서가 오히려 뒤바뀌어 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아웃 랩(out-lap): 피트 스탑 완료 후 첫번째 랩
오버컷(Overcut)
오버컷은 서킷의 노면이 거칠거나 르망 24시간의 야간 스틴트처럼 새 타이어의 열을 올리기 까다로운 환경에서 주로 활용되는 언더컷의 정반대 개념이다. 만약 GMR-001 하이퍼카에 앞서 달리는 경쟁 차량이 먼저 피트 스톱을 수행할 시, 이에 말려들어 동시에 피트 스톱을 하는 대신 트랙에 그대로 남아 2~3랩을 더 주행하며 상대의 페이스를 관찰하는 것이 오버컷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로 인해 GMR-001 하이퍼카는 비록 마모된 타이어로 주행해야 하지만, 이미 열이 최대로 가해진 기존 타이어와 앞차들의 피트인으로 정리된 트래픽 덕분에 확보한 깨끗한 기류 속에서 랩타임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후 피트 스톱을 마친 경쟁 차량이 차가운 새 타이어의 온도를 올리는 과정에서 페이스를 끌어올리지 못하는 사이, GMR-001 하이퍼카는 그동안 축적한 시간 격차를 바탕으로 여유롭게 피트 스톱을 갖고, 트랙에 복귀한 이후에도 경쟁 차량보다 앞선 포지션을 선점하며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안전 구간을 기회로 만드는 피트 타이밍
WEC의 또 다른 피트 스톱 전술이자 승부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일종의 반전 카드는 바로 ‘풀코스 옐로우(Full Course Yellow)’나 ‘버추얼 세이프티 카(Virtual Safety Car)’ 등 안전 구간을 파고드는 타이밍이다.
벨기에의 스파-프랑코샹 서킷을 기준으로 정상 주행 상황 아래에서 피트 스톱을 진행할 시, 시속 300km로 직선 구간을 질주하는 경쟁 차량들에 비해 대략 50초에서 60초에 달하는 시간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풀코스 옐로우가 발령될 경우 서킷 위의 모든 차량이 일제히 시속 80km로 속도가 제한되기에, 이 타이밍에 피트 레인으로 진입한 차량은 시간 손실을 약 20-30초 줄일 수 있다.
이보다 더 극적인 전술은 트랙 위에서 돌발 사고가 일어난 직후, 안전 구간 규정이 발령되기 전 단 몇 초의 찰나를 노려 피트 스톱을 단행하는 것이다. 이때 레이싱 팀의 운영진은 서킷을 달리는 차량의 위치를 기반으로 안전 규정 발령 전 피트 진입 가능 여부를 정확히 판단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만약 이 타이밍을 완벽하게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면, 트랙 위 모든 차량의 속도가 제한돼 차량 간 격차가 줄어드는 만큼 순식간에 여러 순위를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다.
이어 Part 4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