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와 예술의 동행 – 조성호 작가와 제네시스의 만남
‘제네시스 청주’는 단순한 자동차 전시관 이상의 공간을 지향한다. 단순히 차량을 전시하고 브랜드를 소개하는 공간을 넘어 지역 예술가와의 긴밀한 협업으로 브랜드와 지역사회가 함께 호흡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협업으로 청주에서 활동하는 금속 공예 작가이자 청주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조성호 작가의 특별전시를 진행했다.
조성호 작가는 금속에 독창적인 문양을 표현한 작품들로 각광받는 조형예술가다. 특히 주변의 구조물이나 역사적 장소의 표면을 채취, 탁본한 다음 금속에 옮겨 공간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품 활동을 주로 한다. 무심코 스쳐 지나칠 수 있는 사물에서 독특한 조형미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조성호 작가의 세계관은, 눈에 보이는 우아함을 넘어 보이지 않는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제네시스의 정성스러움과 닮아 있다.
이번 전시가 상업 브랜드와의 첫 협업 전시라고 들었다. 제네시스와 함께 하기로 결심한 계기 또는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첫 제안은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을 통해 받았다. 제네시스가 청주에 새로운 전시관을 오픈하면서 문화, 사회적인 교류가 이뤄지는 복합 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싶다는 취지였는데 상업 브랜드가 이러한 목적으로 구체적 협업 제안을 해온 점이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 아무래도 금속을 주요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해온 터라 자동차와 공통분모가 있어 연락을 해온 게 아닐까 싶었지만, 지역 문화 예술을 기반으로 한 문화공간을 조성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취지가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특히,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만큼, 예술가로서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도 가능성과 기회를 보여주게 되어 기쁘다.
전시된 <시간의 흔적>, 그리고 <시간의 적층> 작품 모두 ‘시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시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간은 우리가 인지하든 못하든 계속 흐르고 그 시간 속에는 다양한 서사가 있다. 우리는 그 시간을 기록하고 활용하기 위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제작하는데 저는 금속을 재료로 그 시간을 담고 싶었다.
특히, 시간의 기록도 중요하지만 시간 속 서사를 곱씹어볼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모두가 사소하게 여기고 무심코 스쳐 지나간 시간까지도 되짚어 볼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에 주변의 여러 사물이나 흔적을 탁본으로 채취해 금속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금속’을 주 소재로 활용하게 된 계기는? 본인이 생각하는 금속의 매력은 무엇인가?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는 금속에 여러 재료를 더하고 곁들인 장신구를 제작했지만, 점점 금속이 가진 고유의 물성(物性)에 집중하게 되었다. 금속 중에서도 특히 은(銀)을 주로 사용하는데, 고급스럽지만 변색이나 표면 변화가 잘 일어나는 특성이 있는 은은 관심을 갖고 다듬어주어야 본연의 빛깔을 유지한다. 손이 많이 가는 재료이지만 섬세하게 작업하면 할수록 본연의 멋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소재라 애정이 많이 간다. 어쩌면 손세차를 고집하는 자동차 애호가가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소재 외에도 작품활동을 하면서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작품 또는 사물의 피상적인 모습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 혹은 엔지니어의 의도 이면의 새로운 걸 찾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보이는 면을 넘어 ‘마감은 이렇게 되어 있구나,’ ‘홈은 이 정도 깊이로 파여 있구나,’ 등의 세밀한 부분들까지 구석구석 발견해 내는 행위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제네시스를 테마로 작업한 작품들에도 이러한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 언제, 어디에서 탁본한 것이고, 어떤 제네시스 모델의 어느 부분을 갖고 작업한 것인지 상세히 새겨 둠으로써 외적 형상 이면의 스토리도 연상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경주에서 채취한 탁본에 제네시스의 이야기를 더해 완성한 작품이 있다. 하나의 작품에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이 공존하며 새로운 서사를 상상해 볼 수 있는 묘미가 있어 개인적으로도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작품과 함께 전시된 차량 보닛이 눈에 띈다. 함께 전시한 이유가 있는지?
이건 개인적으로 브랜드에 굉장히 감명받았던 것 중 하나이다. 제네시스와 협업하면서 알게 된 이 클램쉘 후드는 수공(手工)의 가치를 인정하고 실현하는 럭셔리 브랜드라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부품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생산의 효율만을 생각하는 게 아닌, 브랜드가 추구하는 장인정신과 혁신, 독창적인 디자인이 모두 녹아 있는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아 보자마자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전시를 보러 온 많은 관람객이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고 후드의 뒷면은 어떻게 생겼는지, 옆에서 보는 모습은 또 어떤 지,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을 보며 제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관과도 매우 잘 맞는다 생각한다.
말씀하신 제네시스 관련 작품의 경우 제작에는 어려움이 없었나?
작품의 기반이 되는 왁스 탁본 작업은 온도에 굉장히 민감한데 작품을 제작했던 시기가 한겨울이라 열풍기를 써가며 작업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제네시스 차량의 매끈한 디자인으로 인해 오히려 탁본에 적합한 굴곡이나 거친 표면, 다양한 질감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제네시스 측에서 수장고를 방문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덕분에 과거 ‘에쿠스’부터 각종 콘셉트 모델까지 작품 제작에 활용하게 되어 풍성한 소재로 제네시스의 여정을 담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전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먼저 이번 전시를 통해 제네시스가 단순한 고급차 제조사로만 생각했던 인식이 바뀌었다.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 그 이상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도전정신과 장인정신에 기반한 뚜렷한 철학이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또한, 전시공간까지도 후각, 촉각, 미각 등 고객의 오감(五感)까지 고려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험을 중시하는 예술가로서 뿌듯했고 많은 영감을 받았다.
저 역시 작품 구상에 앞서 ‘오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요즘의 우리는 넘쳐나는 콘텐츠들로 인해 시각적인 요소에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모든 기억과 경험은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소리, 향, 맛, 온도 등 오감이 한데 어우러져서 만들어진다. 그 오감적 요소를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는지에 따라 어떤 기억은 더 또렷할 수 있고, 어떤 경험은 더 소중해진다.
같은 맥락으로 이번에 전시한 제네시스 작품 또한 제네시스를 타 본 사람과 타보지 못한 사람이 받아들이는 깊이가 다를 수 있다. 차량에 따라 착좌감은 어땠고, 레그룸의 거리감은 어땠는지,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느낌은 어땠는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 소리 등 오감으로 느낀 느낌을 통해 복합적으로 기억되고, 관람객들은 각자의 기억을 기반으로 작품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들은 관람객 각자의 오감을 통해 내가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풍성해지고 독창적으로 재해석된 새로운 기억들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협업이 그동안 진행해 온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이전에는 주로 관람객을 특정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해왔다면, 브랜드와의 협업은 명확한 목적과 대상을 정해두고 작품을 제작하게 되어 활동 범위를 넓히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또한, 기존의 작품 방향성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브랜드가 원하는 부분들을 맞추고 조율해 가는 과정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 물론 제네시스 측에서 제가 제안한 많은 사항을 상당히 수용해 주었고, 결과물에 대해서도 만족스럽다는 피드백을 많이 주어서 협업 과정 내내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또한, 이번 협업은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졸업 후 작가 혹은 기업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하며 예술과 산업을 접목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진로의 다양성을 보여주었을 것이고, 그들에게 많은 자극이 됐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에 대한 소감이 궁금하다.
제네시스가 제네시스 청주를 차량 전시 공간을 넘어 작가와의 협업 등으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가꾸어 나가고자 하는 방향성은 예술가로서 굉장히 환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과 거리감을 느끼고 막연히 어려워한다. 그러나 예술은 교양 수준이 아주 높고 조예가 깊은 사람들만의 문화가 아닌, 일상에서 가깝고 편하게 경험할 수 있고, 나아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볼 수도 있는 경험의 영역이라는 것을 제네시스가 널리 제안해 주길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협업은 아주 의미 있고 고마운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할 수 있는 지역민들에게 이런 커뮤니티 공간은 매우 소중하다. 이곳에서 보다 다양하고 활발한 문화생활들이 꽃피길 바란다.